주거안정예산 10조원 시대 개막… 돈 쏟아부으면 전셋값 잡을 수 있을까
오는 2021년도 주거안정대책 예산이 사상 최초로 10조원을 넘어섰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규모를 늘리는 것에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지출전략과 정책 기조 변경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2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558조원)이 통과된 뒤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전세시장 안정에 10조원 올인(All-in)…국회가 3조 더 실어줬다
3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국회는 지난 2일 약 558조원에 달하는 2021년도 예산안을 처리했다. 이 가운데 주거안정대책 예산은 10조8613억원으로 확정됐다. 올해 관련 예산 5조7049억원보다는 두배 가까이 늘어난데다 정부원안보다도 3조2391억원이나 증액된 수치다. 역대급 전셋값 폭등과 전세 공급 가뭄이 진행되는 만큼 주거 안정을 위한 실탄을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정부와 국회의 의지가 드러난 것이다.
국회 증액분 3조2000억원 중 정부 예산 증액분은 7000억원, 기금증액분은 2조5000억원이다. 기획재정부는 증액된 예산을 통해 오는 2021년과 2022년 임대주택을 당초 계획했던 9만5000가구보다 1만9000가구 늘어난 11만4000가구 공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세부적으로는 민간이 새 집을 건설하면 정부가 매입해 신축 전세형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신축 매입약정 주택 관련 예산’이 1조6245억원에서 2조2990억원으로 6745억원 늘어났다. 기재부는 증액을 통해 신축 매입약정 주택이 1만2000가구에서 1만7000가구로 5000가구 정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 도심의 비어있는 사무실과 상가를 개조해 공공임대로 공급하는 비(非)주택 공실 리모델링 사업에도 4775억원 증액된 9250억원이 배정됐다. 내년부터 7400가구 규모가 공급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전용면적 60~85㎡의 중형 공공임대 주택 예산도 1813억원 새로 배정했다. 내년 신규승인될 공공임대주택 4000가구 중 1000가구는 중형 면적으로 공급될 예정이다. 이 밖에도 공공 전세형 주택 도입을 위한 예산 1조8563억원과 오피스텔 등 준주택 사업자의 전세전환 시 기금대출 예산 1500억원이 국회 증액과정에서 새로 편성됐다.
더불어민주당도 보도자료를 내고 ‘서민 주거안정’이라는 항목에 "도심 내 중산층까지 양질의 임대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빌라 등 다가구주택을 매입하여 개보수 후 저렴하게 임대 추진시킬 예산이 6720억원 증액됐다"고 홍보했다.
◇ 부동산 전문가들 "효과는 제한적일 듯…조속한 집행이 그나마 효율 높일 것"
전문가들은 10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재원을 투입한다고 ‘주거안정’이라는 정책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예산 집행의 속도를 높이면서 정책 기조의 변화도 함께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청약시장을 노린 무주택수요, 저금리 기조, 세(稅) 부담 전가 등 전세가격 불안 요소가 워낙 많다 보니 어쨌든 필수 불가결한 사업으로 보인다"면서 "중산층의 전세난까지 완화하기는 어려워도 주거 소외계층이나 서민층의 주거 안전망 확충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란 전망도 여럿 나오고 있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전체 임대차 시장에서 11만4000가구는 사실 미미한 규모"라며 "임대차 시장이 극적으로 안정화되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11만4000가구 중에서도 빌라 등 다세대·다가구 주택 매입 임대는 사실상 기존 공급분과 겹친다"면서 "상가·오피스 개조를 통한 공급은 어느 정도 신규 공급으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상가·오피스 개조를 통한 공급도 아파트 주거에 비하면 질이 떨어진다"면서 "시장이 원하는 공급이 아닌 억지춘향식 공급은 효과가 반감되고 예산만 많이 들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그나마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예산을 최대한 빨리 집행해 단기간에 공급을 극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함영진 랩장은 "올해 입주 물량이 모두 27만996가구인데 내년엔 22만7836가구로 16%가량 줄어든다"면서 "특히 상반기는 9만7903가구에 불과해 전세시장 불안이 더 심할 것으로 보인다. 임대차 시장의 불안을 완충하기 위해 속도감 있는 예산집행이 필요하다"고 했다.
윤지해 수석연구원도 "주택 임대차 3법의 진통 기간이 적어도 1년이라면 내년 8월까지 공급을 최대한 많이 풀어내야 한다"며 "그러려면 내년 상반기에 예산을 최대한 집행해서 물량을 최대한 많이 공급하는 게 관건"이라고 했다.
정책 기조의 보완과 수정도 동반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윤 수석연구원은 "결국 모든 문제의 시작은 매물 잠김"이라며 "매물 잠김 현상을 풀어줄 다양한 대책이 수반돼야 한다"고 했다.
고준석 교수는 "신규 물량공급의 키(key)는 결국 민간이 쥐고 있다"며 "예산 투입보다 민간이 물량을 늘릴 수 있도록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풀어주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했다. 그는 또 "사회간접시설(SOC) 등 기반사업들은 간접적인 방식이지만, 중·장기적인 공급물량을 늘리는 데 더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