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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은 정말 골칫덩어리로 전락했을까

오팔86 2018. 11. 22. 15:50



청와대 출입기자들 사이에선 ‘쓸 게 없으면 국민청원 게시판을 뒤지면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한 포털에서 20일 하루 ‘청와대 청원’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한 기사는 무려 274건이다. 이슈가 집중된 사안을 손쉽게 파악하고, 여론을 재확산시키는 장(場)으로 청와대 청원 게시판이 활용되는 셈이다.


소위 장사 되는 선정적 게시물이 집중 기사화되는 현상도 나타난다. 언론이 입맛에 맞는 게시물을 골라 여론을 재확산시키고 다시 또 게시물 내용이 이슈가 되면 반복해 기사화한다.  


그런데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을 주제로 한 언론보도를 보면 골칫덩어리로 전락한 듯하다. “‘내가 피해자’.. ‘성토의 장(場)’된 청와대 국민청원방”, “이수역 폭행 사건에 ‘젠더갈등’ 진흙탕 된 청와대 국민청원”, “청와대 국민청원, 삼권분립 원칙 위반, 무분별한 청원, 중복 동의 등 문제점 드러나”, “‘현대판 신문고’ 청와대 국민청원, 이대로 괜찮은가”, “靑국민청원 절반이 ‘고발-처벌요구’…그중 14%는 팩트 오류” 등이다.


대표적으로 중앙일보는 지난 13일 “너무 나간 청와대 청원…여론재판장 변질”이란 기사에 이어 19일 “‘갈등 진원지’된 靑 청원...美, 150명 동의한 글만 공개”라는 기사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역기능을 부각시켰다. 

서울신문은 18일자 “국민청원 합니까, 여론재판 합니까”라는 기사에서 “국민이 정책을 제안하고 의견을 내는 직접민주주의의 효과도 있지만, 특정 사건에 섣부른 판단이나 집단 갈등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나온다”며 이수역 폭행사건의 청원 게시판 내용을 들어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국민청원 게시판의 역기능에 대한 지적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당사자들의 주장이 엇갈리고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부정확한 사실을 확산시키고 여론 재판을 부추길 수 있다”이라고 보도했다.  


언론보도는 특정 사건 청원 부작용→청원 게시판 비판→게시판 운용의 개선점 순으로 흘러왔다. 결국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대한 ‘불신’을 바탕으로 한 보도다. 무분별하고 선정적이라던 게시물 내용을 기사화하고 여론을 확산시켜놓고는 청와대 청원 게시판의 문제점이라고 꾸짖는 꼴이다.  


국민청원 게시판에 부작용도 있지만 최근 언론 보도는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게시물 내용이 문제가 되면 ‘단골손님’처럼 나오는 보도가 청와대 청원 게시판의 문제점이다. 게시판 무용론까지 연결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문재인 정부 전매특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 있어 직접 민주주의 구현은 최대 과제였다. 그리고 국민청원 게시판은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답하는 국민소통 창구로 자리잡았다.

  

지난 2017년 8월 개설돼 운용 중인 청원 게시판은 올해 10월까지 30만6000여건의 청원이 접수됐다. 한달 사이 20만명 이상 동의(청와대 답변 의무 기준)를 얻은 건수는 57건이다. 청와대는 52건의 청원에 답변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 폭발적으로 호응하는 이유는 우선 기술적인 요인을 들 수 있다. 국민청원을 하려면 자신이 가입한 SNS계정을 통해 게시판에 접속하고 관련 글을 올리기만 하면 된다. IT기술 발전으로 여론 형성의 편의성도 덩달아 따라온 것이다.


20만명 이상 동의하면 청와대가 답변할 의무가 생기기에 청와대가 직접 문제를 해결한다는 기대감이 크고 이에 따라 효능감을 키운 것도 장점이다. 자기 문제가 곧 사회 문제이고, 정치적 문제이기에 널리 알려 문제를 해결하는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 생겼다. 정치권이 외면했거나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사안을 직접 시민이 정치적 의제로 떠오르게 만드는 것 자체로 국민청원 게시판의 효능을 무시할 수 없다.


일례로 음주운전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한 ‘윤창호법’ 제정 청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입장을 밝힐 만큼 여론의 지지를 얻었고 국회에서 입법 논의 중이다. 경기도 동두천에서 차량 안 여아가 사망하는 사고가 터지고 어린이집 차량 안에 ‘잠자는 아이 확인 장치’인 슬리핑차일드 체크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국민 청원글이 올라오고 난 뒤 보건복지부는 제도 도입을 위한 법 개정을 추진했다. 기존엔 공분을 일으키는 사건 사고가 터지면 국회에서 공론화되고 행정부가 입법을 조속히 촉구하는 식으로 지지부진하게 입법이 이뤄졌다면 시민들이 직접 제도를 만들라고 촉구해 여론이 형성되면 곧바로 행정부가 나서 제도를 정비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권한 밖의 무분별한 청원이 많고, 사실에 기반하지 않고 분풀이 창구가 됐다는 비판도 귀를 기울여야하겠지만 과도한 비판 아래 청원 게시판 무용론으로 이어지는 것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고칠 건 고쳐야 하겠지만 소를 잃지 않았는데도 외양간을 없애면 안 된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16일 발표한 “미국의 ‘위더피플’ 사례를 통해 살펴본 청와대 국민청원의 개선방안”도 자칫 국민청원 게시판을 위축시키는 방향이 될 수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미국의 ‘위더피플’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비교 분석했다. 미국의 ‘위더피플’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벤치마킹 모델로 알려져 있다. 청원사이트 ‘위더피플’은 지난 2011년 미국 오바마 정부 때 개설돼 2016년 12월까지 48만 여건의 청원이 접수됐고 이중 268건이 답변 의무 동의를 받아 227건에 대해 정부가 답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과 달리 ‘위더피플’은 동의 절차 요건이 까다롭다. 청원글을 올리려면 사이트에 가입해 계정(13세 이상)을 만든 뒤 150명으로부터 청원글 공개 여부 동의를 이메일로 받아야 한다. 150명이 동의하면 그때서야 청원글이 게시판에 등록된다. 청와대 게시판이 SNS 가입 계정으로 누구나 한번에 청원글을 올리는 구조라면 미국은 우리보다 문턱이 높은 셈이다. 공개 게시물로 올라와 10만명이 동의하면 60일 안에 백악관은 답변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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