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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무책임한 노조위원장, 고마하이소!” 파업에 반기 든 르노삼성 직원들 본문
7일 부산광역시 강서구 신호동에 위치한 르노삼성 부산공장. 엔진공정의 작업라인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회색 티셔츠를 작업복으로 갖춰입은 근로자들은 굵은 땀방울을 훔쳐가며 복잡한 엔진 구조물을 조립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작업용 로봇도 연신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엔진에 들어갈 부품을 조였다.
7일 르노삼성 부산공장 엔진공정 직원들이 조업에 열중하고 있다./진상훈 기자
이동식 로봇은 사이렌을 울리며 작업이 끝난 완제품을 부지런히 운반했다. 오후 2시 30분을 넘어서자 작업 실적을 나타내는 모니터 화면에는 ‘계획 240대, 실적 240대’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해당 시간에서의 조업 목표치를 문제 없이 달성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날 엔진공정은 일일 목표치였던 320대 제작을 완료했다.
차체공정 역시 분위기는 비슷했다. 직원들은 사소한 잡담조차 하지 않고 조업에 집중하고 있었다. 수십여대의 로봇이 만들어내는 소음과 불꽃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계기판에 적힌 수치를 확인하고 각자 작업에만 몰두했다.
지난 5일 르노삼성 노조 집행부는 돌연 전면파업을 선언했다. 회사측과 벌여 온 2018년분 임금·단체협약 재협상이 결렬됐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파업 첫날인 7일 르노삼성 부산공장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파업에 참여한 직원들이 많아 다소 어수선한 작업장도 있었지만, 엔진과 차체공정은 100%의 출근률을 기록하며 정상 조업을 했다.
판매 감소와 실적 악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경노선을 고집하는 노조 집행부에 반발하는 르노삼성 직원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전면파업 지침에도 불구하고 3분의 2의 조합원들이 조업에 나서면서 집행부의 투쟁동력은 힘을 잃었다.
이날 조업에 참여한 르노삼성 조합원은 "노조위원장과 집행부는 조속한 협상 타결을 원하는 대다수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의미없는 투쟁만 계속하고 있다"며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 채 무책임한 파업 지시만 내리는 노조를 더 이상 믿고 따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전면파업 지침에도 조합원 66% 출근…연령대 높은 공정은 98%가 정상조업
7일 조업에 집중하는 르노삼성 부산공장 차체공정 직원/진상훈 기자
르노삼성 관계자는 이날 주간조 전체 출근대상 조합원 1091명 가운데 725명이 정상 출근해 66%의 출근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엔진과 차체공정은 98%가 출근해 조업에 참여했다. 두 공정 모두 출근 대상자 100여명 가운데 파업에 참여한 사람은 각각 2명에 불과했다. 파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가장 많았던 곳은 조립공정으로 출근률이 38.7%를 기록했다.
출근률이 저조했지만, 조립공정 역시 정오부터 조업을 시작했다. 오후 1시쯤 방문한 조립공정에서는 컨베이어벨트가 느리게나마 가동이 되고 있었다. 라인별로 대여섯명의 직원들이 차체에 각종 부품을 조립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엔진과 차체공정에 비하면 작업 열기는 다소 떨어져 보였다.
7일 르노삼성 부산공장 조립공정에 배치된 생산 실적 모니터. 엔진과 차체공정에 비해 조립공정은 파업 참여가가 상대적으로 많았다./진상훈 기자
조립공정 한 켠에 위치한 작업 실적 모니터에는 계획이 315대로 잡혀있었지만, 오후 1시 18분까지 실적은 8대에 불과했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오후 2시부터 한창 작업 능률이 오를 때라 이날 목표치의 25% 수준까지는 작업이 완료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주간조 조업이 끝난 후 조립공장의 작업 실적은 80대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노조 집행부는 전면파업을 선언했지만, 고객들의 주문량을 맞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한 대라도 더 생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조립공정은 엔진, 차체공정에 비해 파업으로 출근한 직원들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한 생산직 근로자가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진상훈 기자
르노삼성 측은 엔진과 차체공정에 비해 조립공정은 직원들의 연령대가 낮고 노조 집행부를 지지하는 직원들의 수가 많다고 전했다. 한 조합원은 "조립공정 직원들 가운데 상당수는 경쟁사인 현대·기아차 등에 비해 급여가 낮은 점에 불만을 갖고 있다"며 "노사 문제와 관련해 정보를 접하는 채널도 노조에만 한정이 돼 있다보니 집행부의 지침에 잘 따르는 편"이라고 말했다.
반면 엔진과 차체공정은 대다수 직원들이 40대 이상으로 과거 삼성자동차 시절부터 근무했던 사람들이 많다. 르노삼성은 엔진과 차체공정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주로 안정된 일자리를 갖고 사측과 대화로 실리를 챙겨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다고 전했다.
◇ 조합원 신뢰 잃은 강성 집행부…"눈 감고 귀 막은 위원장, 따를 수 없다"
이날 부산공장에서 만난 르노삼성 노조 조합원들은 박종규 노조위원장과 집행부에 대해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이들은 위원장과 집행부가 지난해 10월부터 8개월에 이르는 부분파업 기간 동안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한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지난해 노조위원장을 도와 현 집행부 출범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한 조합원은 임단협 과정에서 사측과의 무의미한 분쟁에만 몰두하는 집행부의 행태에 실망해 지지를 거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르노삼성 부산공장 정문에서 노조 집행부가 텐트를 치고 농성을 벌이고 있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이들의 농성에 관심을 보이는 조합원들이 거의 없다고 전했다./진상훈 기자
그는 "노조위원장과 집행부는 강경투쟁을 통해 더 많은 급여와 성과급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지난달 잠정합의안에서는 결국 기본급이 동결됐다"며 "협상에 실패한 뒤에도 사과는 커녕 회사에 책임을 돌리고 무모한 전면파업을 선언하는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차체공정에서 만난 한 직원은 시간이 갈수록 조립공정에서도 파업 참여를 거부하는 조합원들이 빠르게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지난 4월 집행부가 부분파업 지침을 내렸을 때 신차용 차체를 생산하지 못할 경우 연말로 예정된 신차 XM3의 출시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반박했다가 노조에서 제명을 당했다고 했다.
그는 "함께 조업하는 협력업체 직원들은 파업이 길어지면서 일감이 줄어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다고 말한다"며 "협력사와 부산 지역 경제는 무너져 가는데 노조위원장과 집행부는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의미없는 투쟁만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 벼랑 끝 몰린 협력업체·부산 경제…결국 약자가 모든 피해 떠안은 셈
실제로 부산공장에서 만난 협력사 직원과 자영업자들은 해를 넘긴 노사갈등과 파업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날 부산공장에서 주간조 작업을 마치고 퇴근하던 협력사 직원 하모씨(46)는 "지난해 말부터 르노삼성 노조가 부분파업을 벌이면서 주말 특근과 야간 잔업이 끊겨 수입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며 "가뜩이나 기본급이 적어 잔업수당에 의존해야 되는데 이제 먹고 살 돈조차 벌기 어려워졌다"고 한숨을 쉬었다.
르노삼성 부산공장 맞은편 상가 골목에는 점심시간인 12시 이후에도 유동인구가 많지 않았다./진상훈 기자
르노삼성과 부산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부산공장의 250여곳의 1차 협력사 전체가 올해 1분기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1차 협력업체들의 일감이 크게 줄면서 2차 협력사 중 문을 닫은 회사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부산공장 맞은편에서 돼지국밥집을 운영하는 박모씨(47 )는 "식당을 찾는 사람들 가운데 절반 가까운 비중을 르노삼성 협력사 직원들이 차지했는데 지난해부터 계속된 부분파업으로 이들의 발길이 끊겼다"며 "예년에 비해 매출액이 20%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 지역 전체를 생각해서라도 노조가 다시 협상에 나섰으면 한다"며 "이대로 가다간 부산공장 주변의 상권은 무너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