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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사우디는 왜 석유를 증산하는 걸까. 퍼온글

오팔86 2020. 3. 26. 08:15

 

 

<도대체 사우디는 왜 석유를 증산하는 걸까>

박정욱 피디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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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가 급락의 시작은 지난 3월 6일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간의 석유 감산 합의 불발이었다. 애초에 사우디는 석유 생산을 줄여 코로나 사태로 인한 국제경기 침체 상황에서 국제유가가 떨어지는 것을 막고자 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유가가 높게 유지될 경우 미국의 셰일산업체들이 반사이익을 얻는다고 보고 사우디의 감산 제안을 거절했다. 이에 돌연 사우디가 급격하게 석유생산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했다. 그 결과 국제유가는 급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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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단 러시아의 판단은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미국의 제재로 인해 고통을 당해온 러시아로서는 국제유가를 낮춰 미국 셰일업체들을 고사시킴으로써 경쟁자를 쓰러뜨리고 중장기적인 이익을 도모하겠다고 판단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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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갑작스런 정책 전환은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리 봐도 합리적으로 내려진 정책결정이 아닌 듯하다. 가뜩이나 재정이 어려운데 출혈경쟁이라니! 나는 사우디의 증산 결정이 국내정치적 맥락에서 이뤄졌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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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석유감산을 놓고 협상테이블이 차려진 시점으로 돌이켜보자면, 사우디아라비아는 국내적으로 두 가지 커다란 이슈에 직면해 있었다. 하나는 이 달 초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우려로 비정기 성지순례(움라)를 막은 것이다. 메카와 메디나 '두 성지의 수호자'라는 것이 사우디 왕가의 집권명분이다. 그런 사우디 왕가가 성지순례를 막은 것이다. 아무리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라지만 사우디 정부로서는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칫 오는 7월의 하지(성지순례)까지 막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경우 사우디 왕가로서는 내외부의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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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음으로는 내부 숙청이다. 사우디의 실권자 무하마드 빈 살만(MBS) 왕세자는 현지시간으로 3월 6일 자신의 왕권계승을 위협할 수 있는 잠재적 경쟁자들을 일거에 체포하면서 대대적인 숙청 작업에 돌입했다. 1차 타겟은 MBS의 사촌형이자 전 왕세자였던 무하마드 빈 나예프, 그리고 현 살만 국왕의 동생인 아흐메드 빈 압둘아지즈다. 두 사람 모두 MBS에게 사고가 발생해 왕위승계를 하지 못할 경우 유력한 차기 국왕 후보자들이다. 이 두 사람을 반역 혐의로 전격 체포한 후 사우디는 내부적으로 이에 동조한 세력은 물론이고 부패혐의자라는 죄목으로 현재까지 고위공직자 등 300명 가량을 추가로 체포했다. 대대적인 숙청작업이 내부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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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럼 왜 이러한 숙청이 벌어진 걸까. 아마 사우디 내부에서 MBS의 실정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게 들렸던 것같다. 사우디 정부의 재정적자가 악화되는 것은 물론이고, 아람코 매각 등 MBS가 제시한 청사진도 순조롭게 추진되지 못하는 데다가, 예멘 내전 개입과 아람코 정유시설 피폭 등 각종 안보상 난제까지 추가됐다. 게다가 MBS가 추진한 일련의 '서구적(?)' 개혁 조치들은 사우디의 이슬람 보수세력의 불만을 사기에 충분했다. 자말 카슈끄지 암살사건은 MBS에게 도덕적 흠집까지 냈다. 그러니 보수 이슬람주의자들이 공공연히 무하마드 빈 나예프나 아흐메드 빈 압둘아지즈가 차기 국왕이 되어야 한다는 등의 말을 불만 섞인 투로 하고다녔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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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런데 현직 살만 국왕의 건강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치매 증세가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MBS로서는 자칫 판단력이 흐려진 국왕 주위에서 반MBS 세력들이 왕을 부추겨 차기 왕위승계자를 바꾸도록 모략을 꾸미지 않을까 노심초사할 만한 상황이다. 그러니 최근 이어지고 있는 일련의 숙청은 MBS가 잠재적인 라이벌들에게 기습선제공격을 한 셈이다. (왠지 보시라이를 숙청한 시진핑이나 김정남을 암살한 김정은이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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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사우디 정부가 갑작스레 석유 증산으로 돌아선 배경은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내부에서 위기감을 느낌 MBS가 정적들을 몰아치는 상황에서 러시아가 OPEC+의 리더인 사우디에게 반기를 든 것이다. MBS로서는 또다시 위신이 떨어질 수 있는 모멘텀이었다. MBS는 여기서 밀리면 국내 여론도 악화되고 내부 숙청도 차질을 빚을 지 모른다고 우려한 것 아닐까. 그래서 누가봐도 무모한 결정인 석유 증산을 발표한 것이다. 다시 말해, 사우디 정부의 석유 증산은 합리적인 프로세스를 거친 정책결정이 아니라 국내 정치적 요인에 자극받은 충동적 결정이란 것이다. 이렇게 보면 MBS의 증산 지시에 석유장관을 비롯한 참모진들이 "안 된다"고 말리지 못한 것도 이해된다. 최고 실력자가 광풍의 칼날을 휘두르는데 누가 감히 토를 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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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하지만 이러한 사우디의 결정은 오판이다.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왕정들은 이미 상당한 정도의 재정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난 해 말에 걸프왕정들의 국가부채는 2200억 달러에 달했다. 이 국가들의 2014년 부채 총액이 300억달러였던 것에 비교하면 GCC 국가들의 재정악화가 얼마나 빠르게 진행되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사우디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2019년말 사우디는 국가부채는 1980억 달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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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당장 이로 인한 재정압박 심화는 더 큰 문제다. 사우디 정부는 국제유가 급락으로 인해 500억 리얄(132억달러)의 정부 재정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2020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예산의 5%에 해당한다. 그 고통은 사우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전이될 것이다. 그러면 아래로부터의 불만은 커질 것이고, 이는 약한 정통성을 지닌 사우디 왕가가 가장 두려워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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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결국 사우디는 러시아와의 치킨게임을 멈출 수밖에 없다. 하지만 누가 먼저 '스톱'을 외치느냐가 관건이다. 사우디가 먼저 외칠 경우 MBS가 치킨이 된다. 그로서는 가뜩이나 국내 정치적 위신세우기에 열중하는 이 때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푸틴이 먼저 손을 들까. 단기적으로 버틸 총알은 러시아쪽이 유리하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하지만 푸틴은 사우디와 굳이 척을 직 이유가 없다. 아마도 푸틴은 MBS의 위신을 세워주면서 사우디와의 적절한 수준의 가격 협상을 모색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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