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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를 보여줘…그럼 너에게 빠져줄게”

오팔86 2019. 1. 24. 12:45

1월 10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에비뉴엘 앞. 이른 아침부터 두꺼운 옷을 껴입은 사람들이 롯데백화점 건물 밖까지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전날 오후 이탈리아의 명품 스트리트 브랜드 ‘오프화이트’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한정판 운동화, ‘컨버스×오프화이트 척70(세븐티)’를 발매한다고 기습 공지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공지가 나오자마자 이 운동화를 사기 위한 사람이 롯데백화점으로 몰려들어 전날 오후 6시부터 진을 치는 풍경이 벌어졌다.

이 운동화는 오프화이트가 신발 브랜드 ‘컨버스’와 협업해 지난해 11월 출시한 제품이다. 당시엔 인스타그램을 통해 선정된 일부 소비자만 살 기회를 얻었으나, 이번에 선착순 방식으로 다시 발매됐다. 이 신발의 정가는 18만원이다. 컨버스가 오프화이트와 협업 없이 내놓은 기존의 ‘척70’ 가격은 9만~10만원대. 오프화이트와 협업이 운동화 가격을 두 배로 올려놓은 것이다.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온 임예일(26)씨는 이 제품을 사기 위해 회사에 반차(半次)를 냈다. 임씨는 지난해 11월 1차 출시 때 소식을 늦게 알아 구매하지 못해 아쉬워하던 차였다. 단단히 마음먹고 발매 당일 새벽 3시부터 백화점 문 앞에서 기다린 임씨는 결국 한정판 컨버스를 손에 넣었다. 임씨는 “아까워서 못 신고 다닐 것 같다”며 “인스타그램에 먼저 인증사진을 올려야겠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는 1000여 명의 고객이 몰렸고, 한정 수량인 270켤레가 순식간에 팔려나가면서 대다수 고객은 빈손으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고객 대부분은 20·30대 젊은 소비자였다. 중고 시장에서는 이 운동화 가격이 2배, 3배까지 뛰었다.

소고기·돼지고기·닭고기 등 종류 가릴 것 없이 육식을 즐겼던 김동준(32)씨는 1년 전 육식과 환경 파괴의 관계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고 난 후 고기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다. 김씨는 회사 회식 장소가 대부분 고깃집으로 결정되는 탓에 종종 고깃집에 가지만, 갈 때마다 불편한 마음을 애써 감춘다. 적당히 다른 음식을 먹다가 집에 가는 길엔 마트에 들러 ‘콩고기’를 산다.

요즘 김씨가 기다리는 것은 미국 대안(代案) 고기 브랜드 ‘비욘드미트’의 국내 상륙이다. 비욘드미트는 콩·버섯·호박 등에서 추출한 식물성 단백질을 효모·섬유질 등과 배양해 고기의 맛과 형태, 육즙까지 재현한 ‘대안 고기’를 생산한다. 동원F&B가 지난해 11월 독점 공급 계약을 하고 1월 중으로 제품 3종을 판매할 예정이다.

김씨는 “환경 보호에 가치를 둔 사람을 중심으로 대안 고기에 대한 수요가 조금씩 늘고 있지만 제품 선택권이 많지 않아 아쉽다”며 “하루빨리 국내 판매가 시작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가장 큰 대안 고기 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대안 고기 메뉴를 선보이는 식당이 3000곳을 넘어섰다. 대안 고기를 만드는 임파서플 푸드의 버거용 패티는 우마미 버거, 화이트 캐슬 등 미국 전역 5000개 이상의 레스토랑과 버거 체인점에서 활용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을 드러내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즐긴다.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을 드러내고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즐긴다.

美 밀레니얼스, 1500조원 소비 시장 주도

최근 나타난 두 가지 현상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소비의 주체가 1981년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라는 점이다. 이들은 한국 나이로 치면 대략 20~39세로, 빠른 경우 갓 대학을 졸업해 사회에 첫발을 디디고 소비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거나 이미 소비를 많이 하는 층을 가리킨다.

한국의 고도 성장기 이후에 태어난 이들 세대는 먹고살 걱정 없이 풍요로움 속에서 자라났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1960~70년대 물자가 부족하던 시절에는 먹고사는 게 문제였지만, 이들 세대는 이런 걱정에서 자유롭다”며 “소비 측면에서도 개성과 정체성을 추구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기업들은 이러한 소비 심리를 기막히게 파고들었다. 명품 브랜드가 다른 브랜드와 손잡고 특색 있는 협업 제품을 내놓는 것이 그 예다. 여기에다 일정 수량만 판매해 희소가치를 높이는 ‘한정판 마케팅’을 한다. 서 교수는 “브랜드 간 협업은 기업 입장에서도 대단한 이득”이라며 “새 제품 발매를 위해 생산설비를 추가할 필요가 없는 데다 서로의 브랜드 인지도가 더해져 시너지 효과를 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통 시장에선 제품이나 서비스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자신의 가치 기준을 고려해 소비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환경과 동물 권익 보호를 위해 대안 고기를 구매하는 사람이 그 예다.

이경미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기준이 기능, 감성을 넘어 공공선(common good)이라는 사회적 가치로까지 확대됐다”며 “종이 빨대가 플라스틱 빨대보다 기능이 떨어지고 비싸지만 환경 보호라는 더 큰 가치를 위해 돈을 더 쓰겠다는 것이 좋은 예”라고 설명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유통 업체들이 앞다퉈 밀레니얼 세대 공략에 나서고 있다. 비욘드미트처럼 한국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해 한국 시장에 진출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이들이 밀레니얼 세대를 제1 타깃으로 삼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전 세계 밀레니얼 세대가 경제·사회·문화 전반의 지형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규모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곳은 미국이다. 컨설팅 업체 펑 비즈니스 인텔리전스센터(FBIC)는 “2013년 미국 리테일 소비의 13.5%였던 밀레니얼 세대 비율이 2020년에는 30%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에 따르면 비율 30%는 연간 1조4000억달러(약 1570조원) 규모다.

문제는 앞으로 이 비율이 계속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미 2015년에 미국 밀레니얼 세대 인구수가 그전까지 미국 인구의 최대 비중을 차지했던 베이비붐 세대를 넘어섰다.

중국의 밀레니얼 세대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현재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계층을 형성하고 있고 다른 세대보다 나은 교육을 받고 자랐다. 해외여행과 쇼핑을 선호해 자국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소비력을 과시하고 있다.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어떨까. 국내 밀레니얼 세대는 1098만 명으로, 인구의 21.2%를 차지한다. 소비 시장에서 차지하는 파워는 인구 비중보다 훨씬 크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고 정보 검색에 능하기 때문에 부모나 직장 상사 등 다른 세대에게 정보를 확산하고 소비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기성세대는 각종 제품을 사거나 식당을 예약할 때 밀레니얼 세대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 사실상 ‘구매 결정권’을 밀레니얼 세대가 쥐고 있는 셈이다.

‘이코노미조선’은 미래 소비 주역으로 떠오른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에 주목했다. 앞서 나타난 최근의 소비 현상은 어느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밀레니얼 세대를 잘 알아야 국내 기업이 앞으로의 생존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이코노미조선’이 미래 기업 생존의 열쇠를 쥔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특성과 함께 기업들이 앞으로 어떻게 이 세대를 공략해야 하는지를 분석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성장 과정에 매우 가까이에서 기술 변화를 지켜보고, 그것을 체득해 생활 습관에 반영해 왔다. 이들은 온라인을 단순히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아이템을 소비하는 데도 활용하고 있다. 스마트폰·태블릿 등 디지털 기기와 친숙하고 이를 잘 활용해 정보를 얻는 것이 특징이다.

과거 브랜드 파워만을 보고 소비했던 트렌드를 벗어나 각자가 스스로 정보를 찾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제품을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한다. 일례로 밀레니얼 세대는 화장품 성분 정보를 공유하는 앱인 ‘화해’ 등을 통해 정보를 얻고, 좋은 성분으로 만들어진 제품이라면 잘 알려지지 않은 중소기업 제품이라도 구매한다. 서용구 교수는 “브랜드 파워가 약하더라도 제품력이 있다면 밀레니얼 세대가 주도하는 소비 시장에서 승부를 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밀레니얼 세대의 또 다른 특징은 베이비붐 세대로 일컬어지는 부모 세대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답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부모 세대의 모습을 목격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악화된 경제 상황에서 취업난을 겪었다. 재능이 있어도 뜻을 펼칠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하고 있다는 의식이 강하다. 과거 산업화 세대나 베이비붐 세대는 아끼고 저축하며 소비를 줄였지만, 이들은 ‘현재의 나’를 위해 소비한다. 미래를 위해 지금 나의 행복을 유예하지 않는 세대인 것이다.


‘밀레니얼스 이해하기’부터 시작해야

이경미 교수는 “예전 베이비붐 세대 때는 아침부터 밤까지 부지런히 일하면 나와 내 가족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지만 지금 같은 저성장기엔 똑같이 일해도 돈을 모아 집을 살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기 어렵다”며 “현재의 절약이 앞으로의 대세에 영향을 못 미친다고 보고 당장 내가 원하는 소비를 하는 것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밀레니얼 세대의 트렌드”라고 설명했다.

‘나를 위한 소비’에 돈을 아끼지 않는 밀레니얼 세대는 개성·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브랜드·제품이라면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기호에 따라 선택한다.

또 이들은 사회 정의에 민감한 세대로 환경·인권·인종·동물보호 등의 문제에 정의로운 사회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지키지 않는 기업은 단호하게 거부하고 주변에 정보를 공유해 불매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전문가들은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해 공략해야 미래 소비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주 소비층인 베이비붐 세대의 구매력이 줄어들기 전에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전략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박주영 한국유통학회장은 “50~60대인 현 베이비붐 세대는 10년 내에 대부분 은퇴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할 것”이라며 “지금 밀레니얼스를 제대로 분석하지 않으면 조만간 무너지는 기업이 속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도덕성과 사회적 책임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대라는 분석도 나왔다. 밀레니얼 세대의 이야기를 스피치 행사를 통해 대중에게로 이끌어 내고 있는 박웅현 TBWA코리아 대표는 “많은 정보가 빠르게 공유되는 네트워크 시대에 디지털에 친숙한 밀레니얼 세대의 힘이 더욱 커지고 있다”며 “사회적 가치를 지키지 않아 젊은 세대의 신뢰를 잃은 기업은 이제 살아남지 못하는 시대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쇼핑을 즐기는 밀레니얼 세대의 편의를 높이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바이난트 용건 유럽연합(EU) e-커머스 집행위원회장은 “아마존·알리바바 등 글로벌 유통공룡들은 언제 어디서나 쇼핑을 원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기 위해 온·오프라인 통합 전략을 펼치고 있다”며 “다른 유통 업체들도 빠르게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밀레니얼 세대의 특성을 정형화하기보다는 인간 본성에 따른 욕구에 집중하라는 목소리도 있다. 이경미 교수는 “특정 시기의 출생자들을 딱 구분해 고정관념을 만들면 그들에 대한 깊은 이해가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며 “사람이면 누구나 정보 공유의 욕구, 사회적 가치 추구의 욕구, 자기표현의 욕구를 갖는데, 기업들로서는 ‘어떻게 하면 이러한 인간의 본원적인 욕구에 부응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더 근본적인 접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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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 한국 나이로 현재 20세에서 39세에 해당. 미국 역사·인구학자 윌리엄 슈트라우스와 닐 하우는 공통의 특징을 가진 세대가 일정 주기로 등장한다는 ‘슈트라우스-하우 세대 이론’을 주장했는데, 이들이 1980년대 후반에 이 용어를 처음 썼다. 당시에는 20세기에서 21세기로 바뀌는 시기에 성년을 맞이한 세대라는 의미였다. 밀레니얼은 ‘새 천년이 시작되는 시기’를 뜻하는 명사 ‘밀레니엄(millennium)’의 형용사형이다. ‘Millennial Generation’에서 ‘Generation’을 빼고 복수(複數)의 ‘s’를 붙여 ‘밀레니얼스(Millennials)’로 줄여 부르기도 한다. 보통 1981년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자를 지칭하나 일부 전문가들은 1990년대 이후 출생자로 한정하기도 한다. 디지털에 익숙하고 부모 세대보다 개성과 자기만족,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들이 대학을 졸업해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소비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기업의 주요 고객층으로 자리 잡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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