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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 가이드
[K바이오쇼크·上] 신라젠·헬릭스미스 등 5개사 신약 '최종관문 위기' 3대 원인은 본문
기본기 부족⋅신약개발 조급증⋅돈만 몰리는 산업구조
신약 임상실패는 일상...과도한 기대가 과도한 실망 이어져
그래픽=송윤혜
정부가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내세운 바이오 산업에서 임상 3상 실패 또는 중단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임상 3상은 신약개발의 최종 관문에 해당한다. 강스템바이오텍은 지난 달 24일 아토피피부염 줄기세포 치료제 '퓨어스템AD'의 임상3상 결과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하게 됐다고 밝혔다. 코오롱티슈진·에이치엘비⋅신라젠·헬릭스미스 등에 이은 것으로 올들어서만 5번째 바이오기업의 임상 실패 및 중단 소식이다.
코스닥 시가총액 순위에서 코오롱티슈진은 지난 3월 기준 10위, 신라젠은 6월 3위, 헬릭스미스는 9월 2위, 에이치엘비는 지난달 29일 2위에 올랐을만큼 투자자가 몰린 대형주라 충격이 컸다.
‘K-바이오’가 위기에 빠졌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지만 실패가 일상화된 신약 개발에 대한 과도한 기대 탓에 실망이 커 위기의식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 5개사의 임상 3상 실패 또는 중단으로 드러난 지금의 바이오 산업구조 문제를 진단하고 개혁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바이오 기업들이 기본기와 임상역량 부족 속에서도 마라톤과 같은 신약개발 과정에서 단기간내 승부를 보려고 하고, 업계와 투자자들이 과도한 기업가치 띄우기에 공조한 현실이 바이오산업에 대한 신뢰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본기 부족...임상 인재난
코오롱티슈진과 헬릭스미스의 임상3상 실패는 임상 인재난이 빚은 ‘기본기 부족’의 민낯을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코오롱생명과학 미국 자회사인 코오롱티슈진이 개발한 인보사는 2017년 국내 최초 골관절염 유전자 치료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지난 5월 주성분 중 하나가 허가사항에 기재된 연골세포가 아닌 종양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신장세포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에서 임상3상을 진행하던 중 미 식품의약국(FDA)에 의해 이 사실이 밝혀져 임상이 중단됐다.
뒤늦게 식약처도 인보사 허가를 취소했다. 환자들에게도 이미 사용된 치료제여서 파장이 컸다. 코오롱 측은 "주성분이 뒤바뀐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2004년 개발에 나선 지 15년이 흘러서야 잘못된 사실이 드러났다는 건 기업의 역량부족을 실토한 것과 다르지 않다.
코오롱생명과학 뿐 아니라 식약처의 전문역량 부족도 도마에 올랐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인보사 사태가 발생한 지난 5월 기자간담회에서 인보사 사태의 재연 방지를 강조하면서 "국내 의약품 허가 기관인 식약처 전문인력이 확충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헬릭스미스가 지난 9월 유전자 치료제 엔젠시스의 임상 3상 실패를 알리면서 밝힌 이유는 위약군과 신약 후보물질군이 뒤섞였다는 것이다. 위약에서 진짜 신약물질이 검출되면서, 위약 대비 신약 후보물질이 얼마나 효과를 가진지를 입증할 수 없게 됐다. 임상 최종 관문인 임상 3상시험에서 기초적인 실수가 발생한 것이다. 김선영 헬릭스미스 대표도 공개석상에서 이를 "어이 없는 사건"으로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엔젠시스’의 안전성·유효성 입증을 확신한다며 임상 재도전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바이오⋅제약 업계의 한 관계자는 "서툰 경험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보기에는 말도 안되는 실수이며, 무책임한 측면도 있다"면서 "벽돌을 탄탄하게 쌓지 않은 집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기본기가 탄탄해져야 바이오 업계 신뢰도 쌓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한국 바이오가 글로벌 임상3상까지 도전한 게 대단하다"면서도 "글로벌 기준에 적합한 임상 설계와 전략에 좀 더 많은 투자와 경험 공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FDA의 임상3상 통과를 경험한 전문인력이 소수에 불과한 현실이 이번 사태의 주요인이었다는 얘기다.
◇마라톤에서 100미터 달리기하는 조급증
"세포·호르몬 등을 이용해 만드는 바이오신약과 달리 물질을 추출해 화학적으로 합성해 만드는 합성신약은 우리나라에서도 1999년 SK케미칼의 위암 치료제 선플라주를 시작으로 대웅제약 LG생명과학 보령제약 등에서 꾸준히 나와 30여개에 이릅니다. 하지만 이는 1970년대부터 연구개발(R&D)을 하면서 쌓은 오랜 축적의 결과입니다."
중견 제약업체 관계자는 신약개발을 10~15년 걸리는 마라톤에 비유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반면 우리 바이오업체들의 신약개발은 100미터 달리기처럼 조급증이 있다는 설명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따르면 한 후보물질이 임상1상에 들어가 2상, 3상을 거쳐 신약허가 신청까지 통과할 확률은 9.6%에 그친다.
마라톤을 할 만한 체력 부족은 R&D 투입의 격차에서 비롯된다. 지난해 글로벌 R&D 투자 순위 1,2위에 오른 로슈와 존슨앤존슨 두 회사가 지난해 R&D에 쏟아부은 자금은 총 218.6억달러(약 25.5조원)로 지난해 한국 전체 제약시장(약 22조원)보다 3조원 이상 더 많다.
게다가 국산 신약 가운데도 글로벌 시장에서 잘 팔리지 않아 선플라주나 LG생명과학의 항생제 팩티브정, 한미약품의 폐암 표적항암제 올리타정처럼 자진 철수하거나 흥행에 실패한 사례도 있다. 신약 개발 자체도 힘들지만 ‘신약 개발=성공’의 방정식이 늘 성립되는 건 아니다는 얘기다. 신약개발 자체도 중요하지만 마케팅까지 감안한 글로벌 시장 동향 변화를 꿰고 있어야 한다.
◇상장⋅임상 진입 자체로 기업가치 띄우기
조선DB
신라젠은 지난해 연결기준으로 매출액 77억원, 영업손실 590억원, 당기순손실 562억원을 기록했다. 2016년 기업공개(IPO)로 공모한 자금과 투자유치 자금으로 회사를 경영하고 신약개발을 추진했지만, 연평균 500억원의 손실을 냈다. 신약 개발이 성공해 본격적인 매출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외부로부터 운영자금을 조달해야야하는 구조다. 직원은 68명에 불과하다.
바이오업체가 500~1000억원 이상이 투입되고, 성공확률도 50%에 불과한 임상 3상 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적지 않은 리스크가 따른다. 비용 충당을 위해 기업공개(IPO)나 임상 진입 자체로 일반 투자자들을 끌어들인다. 초기 투자자와 창투사들은 이 과정에서 투자를 회수하고, 리스크는 대박을 꿈꾸는 일반 투자자들이 지게되는 구조로 바뀐다.
투자자들에게 과도한 기대심리를 주는 행태도 이 같은 구조와 무관치 않다. 임상 1상,2상,3상 모두 실패 가능성이 있지만 바이오기업들은 실패 가능성을 인정하기를 꺼린다. 증시 투자자들의 반발에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헬릭스미스는 자체 임상 데이터 분석 결과를 외부에 공개했다. 에이치엘비 역시 "글로벌 임상 3상에서 후보물질인 리보세라닙이 성공했다"고 자체 분석 결과를 공개했다. 에이치엘비는 이와 함께 FDA 신약허가신청을 위한 사전미팅을 완료했다고 자체 발표했다. 미국 FDA 허가를 받기도 전에, 자체 임상 결과를 내놓아 결과적으로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타게 했다. 아직 FDA 승인 절차가 남았지만, 에이치엘비는 주가가 이틀간 40%이상 급등해 한국거래소로부터 투자경고종목으로 지정돼 지난달 28일 하루 거래가 정지된 바 있다.
바이오⋅제약업계 관계자는 "임상 중간 결과 발표에 현혹되지 말고, 검증된 학회나 논문 발표 등을 통한 데이터를 통해 해당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미국 FDA와 미팅을 했다거나, 신약 개발 초입 단계인 임상1상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홍보 자료를 뿌리고 허황된 기대를 심어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 여론을 형성하는 행위는 신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임상에 성공했다고 발언할 수 있는 시점은 FDA에 신약 후보물질을 허가신청(NDA) 한 이후부터라는 전문가 의견도 있다.
기술특례 상장 자체에 대한 과도한 믿음이 신약 개발 성공 기대로 이어지는 현실도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창업 9년만인 2005년 상장한 헬릭스미스는 국내 1호 기술특례상장업체다.
KTB투자증권 이혜린 연구원은 지난달 30일 보고서에서 "바이오 기업의 경우 신약 가치가 기업 가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신약 R&D의 성패는 기업의 존폐와도 연결되는 부분인데, 시장은 이를 너무 안일하게 평가하고 여전히 R&D 관련 불확실성을 떠 안고 가는 투자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연이은 임상 3상 실패 또는 중단이 바이오 업계 전체를 위축시켜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김훈택 티움바이오 대표는 "일부 바이오 회사의 실패가 전체 업계의 실패는 아니다"며 "각 사의 역량에 맞게 도전을 하고 있는 것이며 이런 과도기를 거쳐 신약개발에 성공하는 사례도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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