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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환율 패닉 만든 ‘英 초대형 감세안’…“섣부른 정책이 최대 리스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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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환율 패닉 만든 ‘英 초대형 감세안’…“섣부른 정책이 최대 리스크”

오팔86 2022. 9. 29. 10:30

24년 만에 직접 ‘엔화 매수’ 개입 단행한 日 정부
외환준비금 비율 긴급 상향 조정한 中 인민은행
기름부은 英 감세안…”킹달러 앞 무색, 리스크만↑”
우리 정부도 ‘선물환 매도’·‘국민연금 스와프’ 총력

 

 

 

                                                                                         영국 파운드화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두 통화인 중국 위안화와 일본 엔화 가치가 달러 강세의 맹공격으로 급락하면서 ‘제2의 외환위기’ 불안이 드리우고 있다.”  - 블룸버그

 

 

 

 

아시아 경제의 양대 축인 중국과 일본이 날로 거세지는 ‘킹달러’(King Dollar·달러화 초강세) 현상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자국 화폐 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시장 개입에 나섰다. 문제는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고 있는 미국과 달리 중국과 일본은 경기 부양을 위한 초저금리 기조를 고수하고 있어, 정부의 개입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계속되는 시장 개입에도 불구하고 엔화와 위안화 가치 방어에 실패하면 정책 신뢰도만 저하되고, 통화 가치를 더 떨어뜨리는 부작용만 양산할 수 있다.

 

각국 중앙은행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강도 긴축에 따른 자국 통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앞다퉈 기준금리를 올리고, 외환 개입에 나서는 등 이른바 ‘역(逆)환율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강달러 추세를 저지하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일부 국가의 정책 결정이 외환·금융시장 리스크(위험)를 키우는 양상이다.

영국 정부가 지난 주말 약 70조원 규모의 감세안을 발표한 뒤로 파운드화 가치가 추락하면서 달러화 강세를 부채질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 후폭풍으로 한·중·일 통화가 추가 약세를 압력을 받았고, 원·달러 환율도 지난 26일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장중 1435원까지 치솟았다. 경제 전문가들은 현재 한국 정부가 환율 안정을 위해 쓸 수 있는 카드가 부족한 상황에서, 역으로 시장 불안을 키울 수 있는 섣부른 대응은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와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뉴스1
 
 
 

◇ ‘1달러=145엔’ 깨진 日…시장 개입했지만 ‘효과는 미미’

 

 

일본 정부는 최근 엔저(円低·엔화 가치 하락) 현상이 심화되자 24년 만에 엔화를 매수하는 외환시장 개입을 단행했다. 지난 22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가 장중 달러당 145.89엔까지 뛰는 등 1998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자 정부가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것이다.

당시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달러를 팔고 엔화를 사들이면서 환율이 140엔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시장 개입 규모는 3조엔 규모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튿날 런던 외환시장에서 엔화 값은 다시 달러당 143엔대로 높아졌고, 26일에는 한때 144엔대로 올라서기도 했다. 시장 개입에 ‘반짝’ 반등했던 엔화 가치가 하루 만에 다시 약세로 돌아선 것이다.

 

                       일본 도쿄에 있는 일본은행 건너편의 분관 입구에서 경비원이 근무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장 전문가들은 역대급 엔저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미국과 일본의 금리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이상 외환 개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지난 27일 기준 일본의 단기 정책금리는 -0.1%, 2년물 국채 금리는 -0.07%로 주요국 가운데 유일하게 마이너스(-)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의 정책 금리는 3~3.25%, 2년물 국채 금리는 4.31%로 일본과 차이가 크다.

 

마젠 이사 TD증권 수석 외환 전략가는 “해외 중앙은행의 개입 없는 일본 정부의 단독 엔화 매수는 지는 게임이나 마찬가지”라며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 개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도시히데 키우치 노무라종합연구소 이코노미스트는 “개입 효과는 첫회가 최대이고, 이후에는 점차 낮아진다”며 “일본 정부의 환율 개입은 미국의 금리인상 기조에 변화가 생길 때까지 시간벌이 정도가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금리를 올려 시중에 풀린 달러화를 회수하고 있는데, 일본은 초저금리를 유지하면서 엔화 공급량을 늘리고 있어 엔화 가치는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연초 달러당 115엔 수준이었던 엔화 가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고강도 긴축정책을 시행한 이후로 약세를 지속하고 있다. 올 들어 엔화 가치는 달러화 대비 약 20.7% 떨어졌다.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기 위해 급격한 금리인상을 단행한 미국 등 주요국의 중앙은행과 달리 일본은행은 가중된 국채 이자 비용을 정부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금리를 올리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엔화 가치 추락을 부채질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도쿄 시내의 환율 전광판 앞에 행인들이 서 있다. 지난 22일 일본 중앙은행이 엔저를 저지하기 위해 1998년 이후 처음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하면서 달러당 140엔대까지 회복했던 엔화 가치는 이날 144엔대로 후퇴했다. /연합뉴스
 
 
 

◇ 中 인민은행도 ‘환율 방어’ 총력

 

 

중국 인민은행도 최근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이 2년 만에 ‘심리적 저항선’인 7위안을 넘어서자 긴급 조치에 나섰다. 지난 26일 인민은행은 선물환에 대한 위험준비금 비율을 이달 28일부터 0%에서 20%로 상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외환위험준비금은 금융기관이 선물환 거래를 할 때 인민은행에 1년간 무이자로 예치해야 하는 금액의 비율이다.

인민은행은 “외환시장 기대치를 안정시키고 거시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환위험준비금 비율을 높이면 선물환 거래 비용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위안화 매도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다만 중국 정부의 시장 개입 이후에도 위안화는 약세를 지속했다. 지난 27일 인민은행은 위안화의 달러 대비 기준 환율을 전 거래일보다 0.0424위안(0.56%) 올린 7.0722위안으로 고시했다. 위안화 가치가 2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하락한 것이다.

켄 청 일본 미즈호은행 외환 전략가는 “미국의 고강도 긴축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은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동결하는 상황이라 당분간 위안화 가치 하락세를 뒤집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본관.
 
 

◇ 英 감세안이 촉발한 ‘파운드화 급락’ 글로벌 금융시장 휘청

 

 

일본과 중국의 ‘환율 방어’ 대책이 킹달러 기조 속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가운데 일부 국가의 정책이 환율 불안을 증폭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든 영국 파운드화 가치 급락이 대표적이다.

 

파운드화 가치는 지난 26일(현지시각)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이날 파운드화의 미 달러 대비 환율은 장중 한때 1.03달러까지 밀렸다. 이전 최저치는 37년 전인 1985년 2월 26일의 1.05달러였다.

 

지난 주말 리즈 트러스 총리가 이끄는 새 영국 정부가 발표한 약 70조원 규모의 감세 정책이 파운드화 급락을 촉발했다. 대규모 감세를 통해 투자를 유치하고 경제 성장률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감세안으로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이 심화되고, 국가 부채가 급증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면서 파운드화 투매현상에 불이 붙었다.

정부 감세안이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고 있는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의 긴축 정책과도 어긋난다는 비판도 나왔다. 최근 영란은행은 기준금리를 0.5%포인트(p) 인상하는 빅스텝을 2차례 연속 밟았다.

 

 

 

리즈 트러스 영국 신임 총리가 런던 하원에서 열린 취임 후 처음으로 '총리 질의응답'(PMQ)에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시장에서는 조만간 유로화에 이어 파운드화마저 ‘패리티’(1달러=1파운드)가 깨질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영국 더 타임스는 “올해 들어 파운드화 가치가 미 달러 대비 22% 떨어졌다”며 “연말에는 1파운드가 1달러가 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로화 역시 파운드화 가치 급락과 이탈리아 총선 리스크가 맞물리면서 연일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날 유로화는 달러 대비 0.95달러선으로 주저앉았다. 이는 20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26일(현지시각) 이탈리아 총선에서 극우연합이 승리하면서 극우 정당인 이탈리아형제들(FdI)의 조르자 멜로니 대표가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탈리아 우파가 강력한 재정 지출과 감세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에 시장에서는 이탈리아 재정위기가 부각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이탈리아 총선 다음날인 지난 26일(현지 시각) 일약 제1당으로 부상한 이탈리아형제들(Fdl)의 조르자 멜로니 대표의 사진이 일간지 1면을 장식하고 있다. Fdl은 출구조사 결과 선두로 약진했고 우파 연합에서 최대 지분을 가진 멜로니 대표가 총리직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연합뉴스
 
 

◇ “과거 외환정책 기조 전환하는 데 초점 맞출 때”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뚫으면서 우리 외환당국 역시 그동안 구사했던 시장개입 외에 다양한 환율 방어 정책을 가동하고 있다. 가장 먼저 내놓은 카드는 한국은행과 국민연금의 통화스와프 계약이다. 금융위기로 외환보유액 확충 필요성이 커지자 중도 해지했던 2008년 이후 14년 만의 부활이다.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에 필요한 달러를 외환보유액에서 조달하면 외환시장의 달러 매수 수요가 그만큼 줄어들 것이라는 계산에서 나왔다. 규모는 100억달러 수준이다.

 

뒤이어 제시한 카드는 조선업체들의 ‘선물환 매도’를 지원하는 정책이다. 선물환 매도는 조선사 같은 수출업체들이 환 손실을 막기 위해 자주 쓰는 방식이다. 향후 환율 하락으로 손해 보는 일을 피하기 위해, 달러를 일정 환율로 고정해 미리 은행에 매도하는 것이다. 이때 조선사들의 선물환을 사들인 은행은 외환포지션(외환 매입액과 매도액의 차액)을 유지하기 위해 같은 규모의 달러를 외화자금시장에서 빌리고, 이를 외환시장에 매도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조선사의 선물환 매도가 늘면 외환시장에 달러 공급이 늘어 환율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 정부가 이를 돕겠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초대형 LPG운반선의 시운전 모습.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현대중공업그룹 제공
 
 
 

이를 위해 우선 기존 거래 은행의 선물환 매입 한도 확대를 유도하고, 여기에 수출입은행이 조선사에 대한 신용한도를 늘려 조선사의 선물환 매도 물량을 흡수하기로 했다. 필요시 외환당국이 직접 외국환평형기금을 동원해 선물환을 직접 매입하는 방식도 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런 방식으로 연말까지 약 80억달러의 선물환 매도 물량이 국내 외환시장의 달러 공급으로 이어지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외환당국은 이에 그치지 않고 민간의 해외 금융자산을 다시 국내로 되돌리기 위한 방안도 추가로 강구 중이다. 기업이나 금융사들이 해외에 보유한 자금을 국내로 들여오거나, 외국계 기업이 국내로 자금을 들여올 때 금융·세제 등 측면에서 혜택을 주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상황이 좀 더 심각해질 경우 해외 금융투자에 대해 일종의 제동을 걸 수도 있단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런 조치들은 원화 가치의 과도한 절상을 막기 위해 만든 제도를 시장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조정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일례로 선물환 매도를 지원하는 방안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물환 거래를 억제하기 위해 만든 제도와는 반대 방향이다. 과거 조선사들의 선물환 매도 증가는 ‘억제’해야 할 대상이었으나 지금은 그 입장이 바뀐 셈이다.

 

2003~2008년 조선업계 호황기 당시 선박 수주가 급증하자 환율 하락 위험에 대비한 국내 조선업체들은 선물환 매도를 통해 환 헤지(위험 회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는 하필 환율이 추락하던 시점과 맞물리면서 문제가 됐고, 조선업계는 당시 환율 하락의 주범으로 몰렸다. 외환당국이 선물환 거래를 줄이기 위한 각종 규제를 추진했던 이유다.

시장에서는 이런 조치가 시장의 공포 심리를 일부 잠재울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강달러 충격이 장기화될 수 있기 때문에 무리하게 시장에서 달러를 풀어 외환보유액을 축내는 방식보다는 과거 환율 절상을 막기 위해 시행했던 각종 제도 장치를 시장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곽노선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재 강달러 기조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외환당국이 시행 중인 각종 대책의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한국은행이 환율 안정 차원에서 다음달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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